동성연애자 킹제임스(King James)
제임스 왕 (1586년, 20세)
[*편역자 주: 잉글랜드 왕 제임스1 세 (*스코트랜드 왕 제임스6 세이기도 함)는 킹제임스성경(KJV) 을 편찬한 독실한 왕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는 프리메이슨이자 동성연애자 입니다. 이글을 편역한 저의 목적은 KJV 성경의 여러가지 우수성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KJV 유일주의(KJV onlyism, KJV 는 영감받은 번역성경으로서 원문성경의 권위를 가진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의 근거로서 하나를 보태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한 말씀을 동성연애자에게 맡기실 리가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제임스왕(1566~1625)은 부모없이 어린시절을 보냈다. 왜냐하면 그의 어머니(메리 스튜어트, 스코틀랜드의 여왕)가 아버지 헨리 스튜어트(Henry Stuart)를 암살(1567 년)한 것으로 추정되는 제임스 헵번(James hepburn) 백작과 결혼함으로써 스코트랜드에서 지탄을 받아 잉글랜드로 도피하였기 때문이다. 제임스왕은 형제나 자매도 없었으므로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의 남성편력은 그가 13 세때, 사촌형인 에즈메이 스튜어트(Esme Stuart)와의 관계에서 시작한다. 공식적으로 제임스왕은 동성연애에 대하여 강경한 입장을 견지했다. 그의 저작물인 바실리콘 도론(Basilikon Doron, ‘왕의 선물’이라는 의미임)에서 “동성연애는 사면불가(赦免不可)한 끔찍한 범죄”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약200 년 후 영국의 철학가 제르미 벤담(Jeremy Bentham) 은 “제임스왕은 사면불가의 범죄를 그 자신이 범하고 있었는데, 자신만큼은 사면을 해준 셈이다.” 라고 제임스왕의 위선적인 면을 비난했다.
(1) 에즈메이 스튜어트(Esme Stuart)와의 관계
제임스왕은 13 세때 에든버러(Edinburgh, 스코틀랜드 중심도시)성에 공식 入城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37 세의 기혼자이며 5 명의 자녀를 둔 사촌형 에즈메이 스튜어트(Esme Stuart)를 만난다. 그 둘은 극도로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는데, 제임스왕은 공식석상에서도 에즈메이를 껴안고 입맞춤을 하곤 했다. 제임스왕은 에즈메이를 침전 근위관(gentleman of the bedchamber)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후에 추밀원(Privy Council, 樞密院, 국왕의 자문기관)의 위원으로 임명하고, 레녹스(Lennox) 공작(duke)으로 추대했다.
에즈메이는 원래 카톨릭교도 였지만 제임스왕에게 충성심을 보일 목적으로 장로교로 개종하였다. 결국 에즈메이는 프랑스로 추방되었지만, 그후에도 계속 제임스왕과 서신으로 자신의 충성심과 애정을 전달했다.
(2) 로버트 카르(Robert Carr)와의 관계
1607년 궁정에서 열린 마상 창경기 도중 17 세의 로버트 카르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제임스왕은 카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美소년 카르는 침전 근위관(gentleman of the bedchamber)으로 발탁되었는데, 知적인 매력은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후 카르는 프란시스 하워드(Frances Howard)와 결혼하게 되는데, 결혼선물로 제임스왕으로 부터 서머셋 백작(Earl of Somerset)위를 수여 받는다. 그러나 그후 카르가 자신의 아내에게 관심을 집중하자, 제임스왕은 카르에 대하여 불만을 털어 놓는 편지를 보낸다. “내가 수백번 당신에게 간청했건만, 당신은 나의 침전에 눕는 대신 몰래 빠져나가 버리는군요.”
이즈음, 카르의 아내가 카르와의 결혼을 반대했던 카르의 친구 토마스 오버베리(Thomas Overbury)를 독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카르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있던 제임스왕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카르부부를 처벌하려 했다. 그러자 카르는 제임스왕과의 관계를 폭로하겠노라 협박하였으나 폭로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결국 사형선고를 받게되나, 제임스왕이 감형해 준 덕에 7 년간 감금되었다가 석방되었다.
(3) 죠지 빌리어즈 (George Villiers)와의 관계
카르와의 관계가 식어갈 무렵인 1614 년 제임스왕은 죠지를 만나게 된다. 죠지는 매우 잘 생기고 지적이며 정직했다고 알려져 있다. 1615 년 그는 기사작위를 받게 되며, 8 년후 버킹검 공작으로 까지 지위가 급상승한다. 2004~2008 년에 아페도르프 홀 (Apethorp Hall, 왕실별장)이 복원되면서,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제임스왕의 침실과 죠지 방을 연결하는 비밀통로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제임스왕은 다음과 같이 수치심없이 대담하게 죠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었다:
“나 제임스는 神도 천사도 아닌 하나의 인간입니다. 인간인 나는 나만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는 버킹검 백작(죠지)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며, 이곳의 여러분 모두 보다도 더 사랑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이 말을 하는 것이며,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저와 같은 행동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를 비난하지 마십시요. 예수님에게 제자 요한이 있었던 것 처럼, 나에게는 죠지가 있습니다.”
17세기 프랑스 시인이자 극작가인 디오필 드 비오(Theophile de Viau)는 “아폴로가 히아킨토스(Hyacinthus, Apollo 가 사랑한 미소년)를 유혹하여 타락시킨 것처럼, 제임스왕은 버킹검 공작과 性的관계를 가짐으로써 그를 타락시켰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기록한다.
또한, 제임스왕은 여러 편지에서 죠지에게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 나의 아내’라는 표현을 쓰고, 자신을 ‘네 아빠, 당신 남편’으로 지칭하곤 했다. 결국 제임스왕은 죠지가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편역: 토라지킴이 (http://www.Time2WakeUp.com)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Personal_relationships_of_James_I_of_England
'진실탐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KJV-onlyism)란? (0) | 2019.06.17 |
---|---|
킹제임스와 프리메이슨?! (0) | 2019.06.17 |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된 증거(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 (0) | 2019.06.15 |
틴데일성경 킹제임스성경 변질 비교 (0) | 2019.06.11 |
일루미나티는 누구인가? full version (0) | 2019.05.20 |